동맹의 풍경 : 주한미군이 불러온 파문과 균열에 대한 조감도 – 메두사의 시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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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맹의 풍경 : 주한미군이 불러온 파문과 균열에 대한 조감도 – 메두사의 시선 3
저자: 엘리자베스 쇼버
출판사: 나무연필
출간일: 3/29/2023
페이지: 348쪽
무게: 452g
크기: 140*210mm
Description
[책소개]
한 해외 인류학자의 주한미군 탐색기
한미동맹 70주년, 우리 안의 미군은 어떤 존재였을까?
세계 질서와 로컬리티를 가로지르는, 주한미군을 둘러싼 다층적 시선
쇼버의 책은 글로벌 자본주의가 전통적인 한미관계, 주한미군의 지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성별과 민족이라는 키워드로만 작동했던 기존의 기지촌 연구는 지역 경제, 로컬리티, 계급/인종/국적의 다양성과 연관되고, 국민국가 간의 기지촌 정치경제학이 국제정치와 로컬 정치로 확대·심화된다. 이른바 포스트 국민국가 체제 시대의 군사기지와 성 산업에 대한 정치한 분석으로, 기존의 시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질서에 대한 새로운 분석이다. 그리하여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네이션을 넘어, 실제적으로 작동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혼종성의 공간으로 한국을 입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 정희진의 ‘해제’ 중에서
2007년에 연구차 한국에 온 엘리자베스 쇼버는 한국 대중이 미국과 미군에 대해 보이는 태도에 의문을 갖게 된다. 한국에서 미국은 오랜 동경의 대상이자 굳건한 ‘동맹국’이었건만, 왜 이곳에서 대중적인 반미 의식이 생겨났을까? 미군과 직접 대면해본 적 없는 많은 이들이 어떻게 미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출발점 삼아 쇼버는 미군 주둔으로 인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문화기술지로 조명해낸다. 외부자의 시선이지만 연구자로서의 정밀함과 균형감을 갖춘 인류학 보고서이다.
저자는 우선 구한말부터 21세기 초반까지 한국의 격동적 근현대사를 압축해 조망한다. 동시대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내재적 분석이자 국제관계의 측면도 놓치지 않은 사전 조사다. 이후 본격적인 탐색이 펼쳐지는바, 동시대 한국의 미군 유흥지(기지촌, 이태원, 홍대)를 탐색하면서 미군, 이주여성, 한국인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그 현장의 목소리를 인류학의 언어로 드러내 보인다. 대중교통의 발달로 기지촌을 벗어나 편리하게 도심 유흥지에 드나들 수 있게 된 미군, 세계화의 진척과 함께 국내의 성 산업에 유입된 이주여성, ‘윤금이 사건’(1992), ‘미선이·효순이 사건’(2002),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평택 대추리에서의 싸움’(2006), ‘한미FTA 체결’(2007)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며 미국 혹은 미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게 된 여러 한국인들(여성과 남성을 비롯해 운동가부터 펑크족까지)의 이야기가 탄탄한 장면으로 펼쳐진다. 각 행위자들의 주체성을 강조하되 이들이 타협해야 하는 더 큰 구조적 힘과 이들의 기저에 흐르는 정동을 함께 분석해냄으로써, 『동맹의 풍경』은 과거와 한층 달라진 새로운 질서를 드러낸다. 또한 이 책이 담아낸 여러 장면들은 미 제국의 전 지구적 군사주의 체제를 되돌아보게 하면서 동시에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여전히 제국의 군대와 함께 살아가는 한국 사회에 대한 몽타주이기도 하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_ 변화하는 세계 질서와 군사주의의 미래
해제_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주한미군과 한국 사회(정희진)
1장 서론: 미군과의 만남, 그리고 폭력적 상상
2장 병영 자본주의: 21세기를 향한 한국의 기나긴 행군
3장 한민족의 딸이 된 기지촌 여성: 민족주의 서사와 사건의 증폭
4장 기지촌 사람들의 목소리: 주변화된 초국적 군사 유흥지에서의 위험과 몰두
5장 이태원 서스펜스: 도심 속 경계 공간의 이질성과 코뮤니타스
6장 스캔들의 온상이 된 홍대: 대안 지대의 미군과 반군사주의 펑크족
7장 결론: 동맹과 적대의 유산
감사의 말│옮긴이의 말│참고 문헌│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한민족론, 산업 역군, 기지촌 문학……
한국의 민족주의적 상상력의 역사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일본의 식민 지배는 한반도에 민족주의적 담론을 태동시켰다. 주권을 침탈당하는 위기 속에서 신채호 등 구한말 조선의 지식인들은 민족적 단일성을 강조하는 한민족론을 개진하고,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인간상을 군인에게서 찾았다.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와 같은 조국의 현실을 타개하려면 물리적 힘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이상은 박정희의 통치 이념으로도 이어지는데, 민족 정서를 강조하면서 사회의 전 영역을 군대와 유사하게 만든 박정희 체제를 저자는 ‘병영 자본주의’라는 개념으로 압축한다. 한국전쟁 이후 상시 주둔하게 된 미군은 줄곧 경제 건설에 필요한 달러를 벌어들일 창구 역할을 했는데, 박정희 시대에 미국과의 안보동맹 역시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다. 베트남전 참전으로 군인들을 비롯해 재벌 기업들이 외화를 벌어들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를 향한 민중의 열망으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던 독재정권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독재의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던 시절, 미국에 대한 대중적 호의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긴다. 저자는 1980년의 광주민주항쟁을 미군에 대한 한국 대중들의 의심이 시작된 기점으로 보면서, 1980년대에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본격적으로 전환되었다고 진단한다. 군사정권의 집권을 묵인하며 이에 반대하는 민중들의 편에 서지 않은 미국의 태도가 문제적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와 같이 민주화의 물결은 반미주의와 결부되는데, 1992년 동두천의 기지촌에서 성 산업에 종사하던 윤금이 씨가 미군에게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은 반미주의의 기폭제가 된다. 저자는 미군 개인의 범죄 사건이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증폭’되는 양상을 살피면서, 기존에는 민족 공동체의 도덕성과 순수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혔던 기지촌 여성들이 민족주의 서사를 강화하는 소재로 활용되었음을 밝힌다. 그 과정에서 ‘양공주’ 윤금이는 ‘미국을 꿈꿨던 우리 민족의 딸’로 탈바꿈되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이 반미주의의 흐름 속에서 써 내려간 ‘기지촌 문학’도 함께 조명된다. 미군 병사와 한국 여성의 성관계를 ‘이종교배’로 바라봄으로써 민족의 재생산이 위협에 처하게 된다는 인식이 드러나며, 문학적 상상력을 불어넣어 미군에 대한 복수로서의 강간 내러티브가 등장하기도 한다. ‘미군은 고삐 풀린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 ‘기지촌은 폭력적 공간’이라는 인식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대중들 속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전 여기 오고 나서야 이곳에서 원하는 일이 뭔지 알게 됐어요.”
기지촌으로 유입된 이주여성들의 이야기
2000년대 후반에 쇼버가 목격한 기지촌은 “1980~1990년대의 민족적 상상에 스며든 이미지처럼 미군이 한국 여성을 학대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이 특별한 풍경에서 서로 조우하는 주변화된 초국적 공간”이었다. 즉 저자는 기지촌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가면서 반미주의를 통해 각인된 ‘폭력적 상상’을 뒤로한 채 시야를 입체적으로 확장해간다. 한때 기지촌에서 접대부로 일하던 나이 든 한국인 여성들은 클럽의 일상 업무를 관리하는 일로 밀려났다. 그리고 한국인 여성들과 경합한 끝에 이 자리로 들어온 이들은 바로 이주여성이었다. 구소련과 동남아시아 등지, 특히 필리핀에서 머나먼 타국으로 온 이 여성들은 자국에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국행을 택했다. 외화 벌이를 장려하는 송출국 정부, 이들을 한국에 보냄으로써 수익을 거두려는 알선자, 성 산업에 필요한 여성을 충원하려는 한국 사회, 이 모든 것을 방관하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맞물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2000년대에 한국은 이와 관련해 국제적 ‘망신’을 당한다. 미국의 한 언론은 한국 기지촌의 성판매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미국 정부가 2002년에 발행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은 여러 이주자들이 인신매매되어 주로 향하는 최종 도착국에 이름을 올린다. 한국 정부는 달갑지 않은 국제적 관심에 떠밀려 2004년에 여성운동 진영에서 그토록 요구해왔던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입국할 때 받아야 하는 E-6 엔터테인먼트 비자 발급 심사가 한층 파렴치해진다. 영사관 직원 앞에서 춤과 노래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엔터테이너임을 입증하는 과정이 신설된 것이다. 이들이 어떤 길로 들어설지 빤히 짐작할 수 있음에도 한국 정부가 만들어낸 허울의 관문이다. 물론 이주여성들을 한국에 입국시키는 알선자들이 이러한 문턱을 편법으로든 우회해서든 넘어설 수 있도록 치밀하게 돕고 있지만 말이다. 한국에 발들이더라도 이들은 타국의 법체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신분의 불안정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이주여성들의 실제 삶은 어떠할까? 경기도 평택의 기지촌에서 일한 한 필리핀 여성의 말에서는 깊은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첫 남자를 생각하면 이제는 필리핀에서 나중에 지을 새집의 대문이 떠올라. 두 번째 남자는 창문이고. 그렇게 이어지는 거야. 집 전체가 완성될 때까지.” 평소에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손님이나 클럽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뿐인 상황에서, 밤이 되면 취하고 망가지고 눕혀지는 사람들이 품는 희망이란 이런 것일까.
필리핀 여성 앤지는 한국의 노래방에서 일할 가수를 모집한다는 얘길 듣고 일에 지원했지만, 막상 한국에 와보니 매일 밤 미군 고객과 술을 마시며 그를 구슬려 비싼 음료를 사 마시게 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토로한다. 또 다른 필리핀 여성 에밀리는 기지촌에서 상담소와 쉼터를 운영하는 두레방 활동가의 도움을 받아 이 ‘사기극’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에밀리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필리핀의 대행인은 그녀의 가족에게 한국에 가는 데 들었던 비용을 전부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기지촌에 유입된 이주여성들이 처한 기만적 상황이다.
한편 위험한 노동 조건과 사회적 낙인을 뒤로한 채 이주여성들은 군인 고객에게 인생을 걸기도 한다. 한때 이곳에서 일했던 한국인 여성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의 필리핀 접대부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인문지리학자 샐리 예는 이러한 여성들이 군인과의 감정을 구축하는 데 들이는 노력을 ‘사랑의 노동’이라 불렀다. 하지만 ‘착한 미군’을 만나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하는 꿈을 실현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저자는 미군과의 비대칭적 만남 속에서 이러한 꿈이 부서진 사례 역시 오버랩해 보여준다.
이태원과 홍대로 나선 미군
글로벌 행위자들의 만남과 세력 경합을 통한 장소 형성 게임
거대도시로 성장한 서울은 그에 걸맞게 교통 인프라 역시 확장해간다. 이에 편승하여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군들 역시 기지촌에서 벗어나 서울 도심의 유흥지에 드나들게 된다. 오랫동안 ‘동두천’과 같은 변두리에 머물던 미군들이 이제는 도시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이태원’과 ‘홍대’로 나서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시작되자 미군들이 쉬는 날이면 버스를 전세 내서 서울로 온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고, 도심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미군이라는 존재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논쟁의 불씨로 피어오른다. 이에 걸맞게 쇼버의 시선은 용산 미군기지 근방이자 한국전쟁 이후부터 이국적 공간으로 인식되어온 이태원, 1980년부터 대안 문화의 상징으로 떠오르며 파티의 중심지이자 좌파들의 안식처로 자리하게 된 홍대로 향한다. 어느 정도 기지촌에 ‘봉쇄’되어 있던 미군들이 도심으로 파고든 뒤 이들과 조우하게 된 한국인들의 다양한 반응은 과거의 인식과 결부되면서도 또 다른 것이었다.
기지촌의 이주여성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피해자성을 되짚되 행위 주체성도 주시하려 했던 쇼버는 이태원과 홍대를 관찰하면서도 유사한 균형감을 유지하며 다양한 시선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가령 김치라면 질색하면서도 한국인들의 쏟아지는 시선을 즐기는 미군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 대해 호의적이지만 짧은 머리 때문에 단박에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걸 힘들어해서 모자를 꾹꾹 눌러쓰는 미군도 있다. 홍대 거리의 여자들을 ‘매춘부’라고 생각하는 미군이 있는가 하면, 지하철에서 자기 옆에 앉고 싶어 하지 않는 한국인들에 대한 복잡한 심사를 드러내는 미군도 있다.
좀더 덧붙이자면, 이는 각각의 개인이 품은 생각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품고 있는 여러 층위의 생각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카투사로 복무했던 한국인 주황은 미군이 한국 남성을 자기네 같은 ‘진짜’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반감을 표하지만, 미군과 함께 파티를 즐기며 보냈던 밤들을 즐겁게 회상하기도 한다. 말끔한 스테레오타입으로 정리되지 않는 다양한 군상들을 책의 곳곳에 담아낸 뒤 그 각각을 분석한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것이야말로 상상에 의해 정형화해 구축된 장면이 아니라 실제 현실을 좀더 가깝게 담은 장면이기 때문이다.
쇼버는 이태원과 홍대를 각각 분석하면서, 우선 이 공간의 곳곳을 여행하듯 찬찬히 스케치해 보여준다. 그렇게 펼쳐진 풍경 속에 지역의 역사를 펼치고, 그다음으로 다양한 행위자들의 목소리를 콜라주처럼 풀어낸다. 시간성과 장소성을 적절히 배합해 다층적으로 보여주려는 전략이다.
근대의 기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태원은 1904년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군사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자 해방 이후 미군 제24군단이 다시금 점거한 곳이다. 이후 이곳은 서양 팝과 록 음악에 관심 있는 이들과 보수주의에 반발하는 이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안식처 역할을 했다. 즉 외국의 이질적인 문화가 갇혀 있으면서도 숨 쉬던 곳이었는데, 이곳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용산 기지에 근무하는 미군들이 가장 많이 찾던 유흥지이기도 하다. 용산 기지가 완전히 평택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태원의 미군 클럽에는 제복을 갖춰 입고 기관총으로 무장한 미국 헌병들이 술집을 드나들며 순찰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에 이르면 이 게토 안에서 또 다른 낯선 문화와 세력이 숙성된다. 게이와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에게 모험과 해방을 불러오는 특별한 구역이 된 것이다. 섹스와 관련한 업소, 음주와 가무가 가능한 클럽, 이슬람 사원을 위시로 한 종교 시설, 관광객을 위한 가게와 음식점이 한데 어우러진 이태원의 거리는 사뭇 독특하다. 이곳에서 쇼버는 미군과 한국인 남성 간에 일어나는 남성성의 긴장을 목격하며, 성 소수자와 외국인을 포함한 다양한 행위자들의 예기치 못한 만남이 만들어낸 경쟁과 어울림의 정동을 짚어낸다.
이태원을 거쳐 홍대로 넘어가면, 미군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변화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홍대에 드나들기 시작한 미군은 한국 반골 청년들의 공간이자 대안 문화의 중심지였던 홍대의 물을 흐리는 주범으로 떠오른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두 여중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후 미군 군사법원에서 장갑차 조종수들이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한국의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이에 홍대 클럽 사장들과 홍익대학교 활동가들은 거리에 보이는 미군들을 밀어내기 위해 미군 출입 금지령을 내린다. 게다가 2007년에 미군이 홍대에서 67세의 한국 여성을 강간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러한 분위기는 더더욱 달아올랐다. 홍대를 기지촌과 유사한 곳으로 본 미군이든, 고국에서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는 향수의 공간으로 본 미군이든, 이곳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어 하던 미군이든, 이들은 문제적 존재로 여겨졌다. 이와 함께 홍대에서 외국인 남성을 만나는 한국인 여성을 낙인찍는 프레임도 나타난다.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멸칭이었던 ‘양공주’라는 말이 다시 부활하여, 외국인에 의해 한국인 여성이 성적으로 타락해간다며 ‘홍대 양공주’라는 낙인을 찍어댄 것이다. 기지촌 여성과 관련된 민족주의적 상상이 얼마나 끈덕지게 이어지는지를 알 수 있는 현상이었다.
한편 이 책의 말미를 장식하는 홍대 펑크족 청년들은 이전에 찾아보기 어려웠던 새롭고 독특한 주체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고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지만, 한국 사회의 주류에서 이탈한 이들은 삼삼오오 홍대 인근에 모여 친목을 다진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적응자인 이들은 2003년 이라크전쟁이 발발하자 반전 시위에 참여하고, 영어 강사로 일하는 외국인 무정부주의자와 친분을 맺으며, 자기 앞에 닥친 군 입대에 문제의식을 느끼며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정치화되어가던 펑크족들이 그다음 발을 딛게 된 곳은 미군 캠프 험프리스의 확장 예정지였던 평택의 대추리였다. 이들은 줄곧 오토바이를 몰고 평택으로 가서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만나는 전형적인 운동가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들은 분명 민족주의적 반미주의자를 비롯한 이전의 운동가들이 닦아놓은 이념적 경로를 이탈한 존재들이다. 과거의 운동가들이 국가를 바꾸려고 했다면, 이 젊은 무정부주의 펑크족들은 국가 권력을 완전히 지워버리려 했다.
자생적으로 피어오른 이 반군사주의자이자 반자본주의자들은 홍대를 오가는 미군들과 부딪히고 말을 섞는다. 한편으로는 미군이 많이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고향에서는 ‘불쌍한 놈’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란다. 이따금 재미있게 놀기도 한다. 그럼에도 뭔가 석연찮은 마음을 품게 된다. 자국 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소외된 존재이니 일시적인 동지애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이 펑크족들은 군사주의 체제에 복무하는 미군의 존재를 완전히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작가 하킴 베이는 억압적인 국가 행위자들이 놓치는 공간에서 일시적으로 대안적인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을 탐색하며 『임시 자율 구역』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2000년대 후반, 펑크족 청년들에게 홍대는 ‘임시 자율 구역’이 아니었을까. 이는 당대의 홍대에서 피어난 새로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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